쿠웨이트와 이라크의 국경부근 유전지대에서 국경분쟁이 일어난데다 이라크는 '이란-이라크의 8년 전쟁'때 쿠웨이트에게 빌려간 외채를 갚을 게 부담스러웠다. 이 2가지 갈등이 한꺼번에 터져 결국 전쟁으로 이어진다.
1990년 8월 2일, 사담후세인의 이라크군은 쿠웨이트를 약 5시간만에 점령, 병합한다.
서방국가들은 좌시할 수 없었다.
페르시아만의 석유도 서방국가들에게는 중요했지만 우방국인 쿠웨이트의 자유가 박탈당한 것도 미국과 영국에게는 좌시할 수 없는 일이었다.
거기다 이라크군의 쿠웨이트에 대한 만행은 국제사회의 분노를 일으켰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미국과 유엔은 이라크에게 91년 1월 15일까지 쿠웨이트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하였고 이라크의 사담후세인은 배짱으로 이를 무시했다.
결국 열받은 미국, 영국, 사우디, 이집트, 프랑스의 5개국이 중심이 된 다국적군은 1991년 1월 17일, '사막의 폭풍 작전'을 개시했고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이라크군을 공습하기 시작했다.
91년 1월 17일부터 5주간 공습은 지속되었다. 다국적군의 아파치 헬기와 F15, F16, F18, 나이트호크 전투기가 이라크군을 공습하였고 미 항공모함과 미 전함에서는 토마호크 크루즈 미사일로 이라크군을 공습하였다.
맛이 간 사담후세인은 이스라엘에게도 스커드 미사일을 날렸다. 이스라엘은 자국 본토가 공격받자 열받아서 참전할려고 했으나 '종교전쟁'으로 번질 것을 우려한 미국은 패트리어트 방어미사일을 주며 이스라엘을 자제시켰고 이스라엘도 그 우려에 동의하여 참전을 철회한다. 이후 스커드 미사일도 미국이 준 패트리어트 미사일에 대부분 요격됐다.
이후 2월 24일부터 다국적군의 쿠웨이트해방을 위한 대규모 지상전이 시작되었다.
지상전이 시작된지 100시간 만에 다국적군은 쿠웨이트를 해방시키고 사담후세인과 이라크는 마침내 항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