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전범재판은 크게 4종류로 분류된다.
뉘른베르크재판(A급 나치전범재판), 19개국군사재판(B,C급 나치전범재판), 도쿄재판(A급 일본전범재판), 9개국군사재판(B,C급 일본전범재판).
일본 A급 전범재판인 도쿄재판은 1946년부터 1948년까지 진행 되었다. 여기서는 난징대학살, 숙칭대학살, 상해대학살, 알렉산드라병원 대학살, 일부의 종군위안소, 사지절단, 화형, 생매장 등이 밝혀졌고 A급 전범 25명이 모두 유죄판결을 받았으며 그중 일왕이나 총리보다 더 실력자인 군부 최고 실력자 도조히데키를 포함한 7명이 사형에 처해졌고 16명은 무기징역에 처해졌다. 731부대 총사령관인 이시이시로는 운좋게 재판을 면했으나 암 중에 제일 고통스런 후두암에 시달리다 죽었다.
일본의 B, C급 전범들은 1945년에서 1956년까지 9개국군사재판에서 다뤄졌다. 여기서 밝혀진 사실들은 더 충격적이었다.
필리핀법정에서는 바탄 죽음의 행진과 마닐라대학살이 밝혀졌고 악질 전범 야마시타, 혼마마사하루, 구로다시게노리를 포함한 92명이 사형에 처해졌다.
미국법정에서는 웨이크섬 생체실험, 규슈제대의대 생체실험, 사이판 생체실험, 팔라우 생체실험, 오료코호 생체실험 등 많은 생체실험이 밝혀졌고 전범들은 모두 사형에 처해졌다.
영국법정에서는 콰이강의 다리 사건 등 일본군들이 포로들과 민간인들을 노예로 삼고 갖은 학대를 일삼은 것이 밝혀졌고 전범들은 모두 사형에 처해졌다.
호주법정에서는 일본군이 인육을 먹은 사실이 밝혀졌고 카니제도의 생체실험도 밝혀졌으며 라바울 죽음의 행진과 대학살이 밝혀졌다. 전범 93명은 사형에 처해졌다.
중화민국법정에서는 100인 참수 경쟁, 300인 목베기 등이 밝혀졌고 전범 5백명이 모두 유죄판결을 받았으며 그중 노다쓰요시, 무카이도시아키, 다나카군키치, 다니히사오 등 149명이 사형에 처해졌다.
프랑스법정과 네덜란드법정에서는 다량의 종군위안소가 밝혀졌고 특히 프랑스법정에서는 일본군이 산 사람의 눈을 도려낸 사실도 밝혀졌다. 네덜란드법정에서는 스마랑 강간 사건이 밝혀졌다. 악질 전범인 가마다마키아키를 포함한 전범 전원은 모두 사형이나 10년형에 처해졌다.
731부대 의사와 헌병대장 상당수는 소련군과 중국공산당군에게 잡혔다.
그래서 소련법정과 중국공산당 푸순전범관리소 심문대에서는 731부대의 생체실험이 밝혀졌고 731부대 전범들은 모두 소련법정에서는 시베리아 유형 6년 강제노동형, 중국공산당 푸순전범관리소에서는 만주벌판의 푸순 유형 6년에서 10년 노동교화제에 처해졌다. 이때 공산권의 추운지역 강제노동형과 노동교화제도는 사형보다 더 끔찍한 것이었다.
도쿄재판과 9개국군사재판에서 밝혀진 사실들을 뉴스, 신문, 잡지, 라디오 등으로 접한 당시 전세계인들은 뉘른베르크재판과 19개국군사재판때보다 더 큰 경악을 금치 못했으며 인간이 그렇게 잔인해 질수 있음에 인류 스스로가 그저 놀랄뿐이었다.
-유창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