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유럽을 활활 타오르게 하라!" 루즈벨트의 부추김을 받은 처칠이 SOE 국장 휴돌턴에게 내린 명령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이 경찰국가 수반 2명이 계산 잘못한 것이다.
땅이 평평하고 산맥과 숲이 적은 유럽은 레지스탕스의 활동 무대가 아니었다.
유럽의 애국지사들은 밀고에 의해서 나치독일군에게 잔인한 보복을 당했고 또 레지스탕스가 발견될 때마다 마을 몇 개씩은 초토화됐다.
폴란드 국내군과 폴란드루블린군이 일으킨 바르샤바 봉기도 나치독일군에게 잔인하게 진압됐다.
자유프랑스계열레지스탕스와 프랑스공산당군도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전인 실제 나치와 비시의 점령기간인 1940년~44년 5월까지는 별다른 활약이 없는 걸로 봐서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
역사학자들이 레지스탕스 성공사례를 찾을 때 결국 바라보는 쪽이 '유고파르티잔'과 '알바니아민족해방전선', '그리스EAM-ELAS'이다. 하지만 산맥과 계곡, 숲이 많은 유고와 알바니아, 그리스는 두 말할 것 없이 특수한 예외로 봐야 한다.
활활 타오르게 할려면 차라리 아시아 저항군들을 독려해야 했다.
산맥과 계곡, 숲이 많은 아시아는 저항군이 활동하기에 이상적인 장소이며 실제로 중화민국군과 중국공산당군, 한국임정광복군, 조선독맹의용군, 조선동북항일연군, 필리핀의 레지스탕스와 후크발라합, 버마자치정부부족민병대, 인도차이나의 베트민, 말라야공산당, 인도네시아반맹 등은 좋은 지형을 이용한 기습과 게릴라전으로 일본군을 많이 곤혼스럽게 했다.
하지만 경찰국가 수반들은 아시아 저항군들은 무기와 장비가 빈약하다는 이유로 정작 아시아쪽은 많이 자제시켰다.
1944년이 되서야 자신들의 계산 착오를 깨달은 루즈벨트와 처칠은 그제서야 유럽을 많이 자제시키고 아시아쪽을 독려하기 시작했다. 우리 광복군의 국내진공작전을 연합군이 승인한 것도 이때쯤이다.
하지만 이때는 유럽의 많은 애국자들이 죽은 후였고 아시아 저항군들도 연합군을 효과적으로 도와줄 시간은 지난 상태였다.
난 이 경찰국가 수반 두분이 이점은 천국에서도 두고두고 후회하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