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4월 6일 르완다의 후투족 정부의 하브자리마나 대통령이 탄 전용기가 격추돼서 사망하자 이를 투치족의 소행으로 의심한 후투족정부군은 화가 나서 투치족과 후투족 온건파 등 무려 자국민 80만명을 집단 학살한다.
94년 7월 4일 투치족반군은 반격하여 수도 키갈리를 점령하고 키갈리에서 외부로 통하는 유일한 길도 차단한다.
투치족반군은 이어 부타레와 기세니까지 점령하니 후투족 민간인들은 투치족반군의 보복이 두려워 주변국들로 피난을 간다. 이게 그 유명한 '르완다 난민'이다.
94년 7월 말에 투치족반군이 승리하고 '전투 중지'선언과 함께 "보복을 안하겠다"는 약속도 하자 후투족 난민들은 모두 1996년 말과 1997년 초에 다시 르완다로 돌아왔다.
이 내전에서는 프랑스의 어이없는 실수가 있다.
94년의 내전에서는 분명히 프랑스가 학살을 자제 시킬려고 병력을 보낸 건데 당시 프랑스군은 학살을 잘 자제 시키지를 못했다.
당시 학살을 자제 시키지 못한 프랑스는 미국, 영국, 유엔 등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