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15

코소보 전쟁.

코소보 지역은 세르비아 영토였으나 오스만 제국 통치 이후 많은 무슬림 알바니아계들이 거주한다. 1946년 2차대전이 끝나고 유고연방의 대통령이 된 티토는 1974년 코소보에 자치주를 인정하였다.​그러나 착한 대통령 티토가 죽고 1989년 극단적 세르비아 민족주의자 밀로셰비치가 유고의 새 대통령이 되면서 1990년 코보소의 자치권을 박탈하였다.이후 유고는 여러개의 나라로 갈라진다.​1995년 코소보해방군이 조직돼서 저항하고 밀로셰비치의 세르비아정부는 '알바니아계 인종청소'의 만행을 저지른다.아무런 국익이 없는데도 보다 못한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나토군을 조직하여 1999년 4월 23일, 세르비아를 공습한다.​세르비아는 실컷 얻어터지고 99년 6월 11일, 세르비아군은 코소보에서 철수하여 사실상 항복한다...

카테고리 없음 2024.11.09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자탄 투하.

1945년 중반이 넘도록 일본은 항복을 안하고 있었다. 이대로 전쟁이 길어지면 미군과 연합군의 희생은 커질 것이고 아시아와 태평양의 민간인들도 일본군에 의한 피해가 늘어만 갈 것이었다.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어떻게해서든 전쟁을 빨리 끝내야 했다.​트루먼 대통령은 포츠담회담에서 소련의 스탈린 수상에게 대일전 참전 약속을 받아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전쟁이 빨리 끝난다는 보장이 없었다.​트루먼 대통령은 결국 히로시마에 원자탄을 투하할 것을 명령하고 미군 B29 폭격기는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탄 '리틀보이'를 투하하고 그래도 항복을 안하자 트루먼은 또 한번 나가사키에 투하할 것을 명령해서 미군 B29 폭격기는 8월 9일, 두 번째 원자탄 '팻맨'을 나가사키에 투하한다.​두 도시는 완전 파괴됐고..

카테고리 없음 2024.11.07

무장저항운동.

"이제 유럽을 활활 타오르게 하라!" 루즈벨트의 부추김을 받은 처칠이 SOE 국장 휴돌턴에게 내린 명령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이 경찰국가 수반 2명이 계산 잘못한 것이다.​땅이 평평하고 산맥과 숲이 적은 유럽은 레지스탕스의 활동 무대가 아니었다.유럽의 애국지사들은 밀고에 의해서 나치독일군에게 잔인한 보복을 당했고 또 레지스탕스가 발견될 때마다 마을 몇 개씩은 초토화됐다. ​폴란드 국내군과 폴란드루블린군이 일으킨 바르샤바 봉기도 나치독일군에게 잔인하게 진압됐다.자유프랑스계열레지스탕스와 프랑스공산당군도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전인 실제 나치와 비시의 점령기간인 1940년~44년 5월까지는 별다른 활약이 없는 걸로 봐서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역사학자들이 레지스탕스 성공사례를 찾을 때 결국 바라보는 쪽이 '유..

카테고리 없음 2024.11.07

20세기 열강들의 식민통치 유형.

영국형 식민통치: 영국은 식민지들에다 자치정부를 허용하고 식민지인들에게 고등교육도 시키는 등 '사실상의 독립'을 허용함으로써 본국과 식민지간의 갈등을 최소화 시킬려고 했다. 단 군사권은 본국이 갖는다.이런 방식은 미국과 영국이 했다.​프랑스형 식민통치: 프랑스는 자치정부가 없는 대신 프랑스문화에 동화되거나 천주교로 개종한 식민지인들은 최대한 본국인들과 똑같이 평등대우를 할려고 노력했던 유형이다.​네덜란드형 식민통치: 네덜란드는 자치정부나 평등대우가 없는 대신 식민지인들의 민족문화운동은 그대로 인정해주는 유형이었다.​벨기에형 식민통치: 벨기에는 '온정주의 식민통치'로서 식민지들에다 각종 복지시설과 복리시설, 병원 등을 지어주는 유형이었다.​일본형 식민통치(무단통치겸 문화통치겸 헌병통치): 이런 방식은 식민..

카테고리 없음 2024.11.06

처칠의 억울함.

장개석의 일기만 믿고 일부의 언론과 일부의 지식백과들이 마치 처칠과 영국이 자기들 국익 때문에 한국의 해방 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것처럼 왜곡해서 말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일단 처칠 수상과 앤서니이든 외무장관, 알렉산더캐도건 외무차관 등 영국쪽에서 신탁통치를 탐탁치 않게 여기고 한국의 완전한 독립에도 반대한 건 사실이지만 한국의 해방 자체를 반대한 건 아니었다.​영국이 신탁통치를 탐탁치 않게 여겼던 것은 실험해 보지도 않은 완전히 새로운 제도였기 때문이고 완전한 독립을 반대한 것은 한국의 행정조직과 자치경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즉 영국의 전후 한국 구상은 과도기 동안 한국에 명목상의 독립을 부여하고 외국인 고문단을 파견, 보호정치를 실시할려고 했던 것이지 한국의 해방 자체에는 전혀 못마땅해..

카테고리 없음 2024.11.06

개념없는 사람들

조선인 전범과 강제 징병자들이 많아서 우리 한국을 전범국이나 추축국으로 봐야 한다는 사람들이 우리나라 안에 있는데 이것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말이다. 2차대전 당시 우리나라는 독립운동단체가 3개 있었다. 한국임정, 조선독립동맹, 조선동북항일연군...,한국임정광복군이 천명 정도 조선독맹의용군과 조선동북항일연군이 각각 천명씩 총 3천명의 항일군이 있었다. 국제사회가 일반적으로 볼때 한 나라가 주권을 잃었을 때 독립운동단체가 하나라도 있을 경우 그 민족의 정체성은 그 독립운동단체에 두게 돼있다.​이 때문에 2차대전 동안 미국, 영국, 소련, 중화민국, 캐나다 등 연합국들은 한국을 정식 연합국으로는 승인을 안했지만 "한국은 연합국편 저항민족"이라는 점은 수도 없이 인정해 왔다. 그리고 이들도 정서상으로는 한국을..

카테고리 없음 2024.11.06

과달카날 해전.

1942년 8월 7일, 밴더그립트 장군의 미 해병1사단은 솔로몬제도의 과달카날에 상륙하여 핸더슨 비행장을 점령한다. 그리고 메리트에드슨 중령의 미 해병 수비대에게 핸더슨 비행장 수비를 맡긴다.​결국 9월과 10월에 일본군이 재상륙하여 핸더슨 비행장을 향해 대대적인 공세를 가한다. 메리트에드슨 중령은 불리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핸더슨 비행장을 지켜낸다. 물론 미 해군항공대의 항공지원도 비행장을 지켜내는데 한몫했다.​해역에서는 미 항공모함이 1척 격침돼서 프랭크플레처 제독과 로버트곰리 제독이 해임되고 후임으로 헐시 제독이 임명됐으나 헐시 제독 역시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항모 호넷호를 잃는 등 고생을 한다.​43년 2월, 결국 일본은 다음 작전을 위해 과달카날에서 철수하고 미국은 승리한다.과달카날 ..

카테고리 없음 2024.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