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108

마다가스카르 해전.

마다가스카르는 연합군이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물자와 병력을 보내거나 반대로 태평양에서 대서양으로 물자와 병력을 보낼때 중간의 휴식처이자 보급로였다. 근데 문제는 이 섬이 자유프랑스령이 아닌 비시괴뢰정부령이었다는 것이다.위기를 느낀 처칠은 마다가스카르를 해방시켜 자유프랑스에게 돌려줄 마음을 갖는다. 사이프렛 제독이 이끄는 영국해군은 1942년 5월 노보루이시자키 제독의 일본해군을 공격하여 격파하고 스터게스 장군의 영국 해병대와 윌리엄플랫 장군의 영국 육군은 섬에 상륙하여 암만드안트 총독의 비시괴뢰정부군을 무찌르고 42년 11월 연합군은 승리한다. 이로서 전략적 요충지인 마다가스카르는 다행히 자유프랑스가 되찾게 되었다.

카테고리 없음 2024.11.09

코소보 전쟁.

코소보 지역은 세르비아 영토였으나 오스만 제국 통치 이후 많은 무슬림 알바니아계들이 거주한다. 1946년 2차대전이 끝나고 유고연방의 대통령이 된 티토는 1974년 코소보에 자치주를 인정하였다.​그러나 착한 대통령 티토가 죽고 1989년 극단적 세르비아 민족주의자 밀로셰비치가 유고의 새 대통령이 되면서 1990년 코보소의 자치권을 박탈하였다.이후 유고는 여러개의 나라로 갈라진다.​1995년 코소보해방군이 조직돼서 저항하고 밀로셰비치의 세르비아정부는 '알바니아계 인종청소'의 만행을 저지른다.아무런 국익이 없는데도 보다 못한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나토군을 조직하여 1999년 4월 23일, 세르비아를 공습한다.​세르비아는 실컷 얻어터지고 99년 6월 11일, 세르비아군은 코소보에서 철수하여 사실상 항복한다...

카테고리 없음 2024.11.09

8월의 폭풍 작전.

1945년 8월, 스탈린은 바실리엡스키 장군이 이끄는 소련군과 로드긴단다르 장군이 이끄는 몽골군, 주보중 장군과 김일성 장군이 이끄는 조선동북항일연군의 3개국 '한소몽연합군'에게 대일전 참전을 준비시킨다.​'8월의 폭풍 작전' 대열은 이렇다. 소련군 총사령관에 바실리엡스키, 트랜스바이칼전선군에 말리놉스키, 제1극동전선군에 메레츠코프, 제2극동전선군에 풀카예프, 소련 태평양함대에 유마셰프 제독을 임명한다. 물론 로드긴단다르 장군의 몽골군과 주보중과 김일성의 조선동북항일연군도 소련군을 지원한다.​이 작전의 목적은 내몽골 지역과 만주 지역을 해방시키는 것이었다.1945년 8월 9일, 소련군이 만주를 침공하고 전투가 시작되었다.소련군은 일본 관동군을 박살내며 순식간에 내몽골 지역과 만주 지역을 해방시킨다. 물론..

카테고리 없음 2024.11.07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자탄 투하.

1945년 중반이 넘도록 일본은 항복을 안하고 있었다. 이대로 전쟁이 길어지면 미군과 연합군의 희생은 커질 것이고 아시아와 태평양의 민간인들도 일본군에 의한 피해가 늘어만 갈 것이었다.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어떻게해서든 전쟁을 빨리 끝내야 했다.​트루먼 대통령은 포츠담회담에서 소련의 스탈린 수상에게 대일전 참전 약속을 받아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전쟁이 빨리 끝난다는 보장이 없었다.​트루먼 대통령은 결국 히로시마에 원자탄을 투하할 것을 명령하고 미군 B29 폭격기는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탄 '리틀보이'를 투하하고 그래도 항복을 안하자 트루먼은 또 한번 나가사키에 투하할 것을 명령해서 미군 B29 폭격기는 8월 9일, 두 번째 원자탄 '팻맨'을 나가사키에 투하한다.​두 도시는 완전 파괴됐고..

카테고리 없음 2024.11.07

무장저항운동.

"이제 유럽을 활활 타오르게 하라!" 루즈벨트의 부추김을 받은 처칠이 SOE 국장 휴돌턴에게 내린 명령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이 경찰국가 수반 2명이 계산 잘못한 것이다.​땅이 평평하고 산맥과 숲이 적은 유럽은 레지스탕스의 활동 무대가 아니었다.유럽의 애국지사들은 밀고에 의해서 나치독일군에게 잔인한 보복을 당했고 또 레지스탕스가 발견될 때마다 마을 몇 개씩은 초토화됐다. ​폴란드 국내군과 폴란드루블린군이 일으킨 바르샤바 봉기도 나치독일군에게 잔인하게 진압됐다.자유프랑스계열레지스탕스와 프랑스공산당군도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전인 실제 나치와 비시의 점령기간인 1940년~44년 5월까지는 별다른 활약이 없는 걸로 봐서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역사학자들이 레지스탕스 성공사례를 찾을 때 결국 바라보는 쪽이 '유..

카테고리 없음 2024.11.07

20세기 열강들의 식민통치 유형.

영국형 식민통치: 영국은 식민지들에다 자치정부를 허용하고 식민지인들에게 고등교육도 시키는 등 '사실상의 독립'을 허용함으로써 본국과 식민지간의 갈등을 최소화 시킬려고 했다. 단 군사권은 본국이 갖는다.이런 방식은 미국과 영국이 했다.​프랑스형 식민통치: 프랑스는 자치정부가 없는 대신 프랑스문화에 동화되거나 천주교로 개종한 식민지인들은 최대한 본국인들과 똑같이 평등대우를 할려고 노력했던 유형이다.​네덜란드형 식민통치: 네덜란드는 자치정부나 평등대우가 없는 대신 식민지인들의 민족문화운동은 그대로 인정해주는 유형이었다.​벨기에형 식민통치: 벨기에는 '온정주의 식민통치'로서 식민지들에다 각종 복지시설과 복리시설, 병원 등을 지어주는 유형이었다.​일본형 식민통치(무단통치겸 문화통치겸 헌병통치): 이런 방식은 식민..

카테고리 없음 2024.11.06

처칠의 억울함.

장개석의 일기만 믿고 일부의 언론과 일부의 지식백과들이 마치 처칠과 영국이 자기들 국익 때문에 한국의 해방 자체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것처럼 왜곡해서 말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일단 처칠 수상과 앤서니이든 외무장관, 알렉산더캐도건 외무차관 등 영국쪽에서 신탁통치를 탐탁치 않게 여기고 한국의 완전한 독립에도 반대한 건 사실이지만 한국의 해방 자체를 반대한 건 아니었다.​영국이 신탁통치를 탐탁치 않게 여겼던 것은 실험해 보지도 않은 완전히 새로운 제도였기 때문이고 완전한 독립을 반대한 것은 한국의 행정조직과 자치경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즉 영국의 전후 한국 구상은 과도기 동안 한국에 명목상의 독립을 부여하고 외국인 고문단을 파견, 보호정치를 실시할려고 했던 것이지 한국의 해방 자체에는 전혀 못마땅해..

카테고리 없음 2024.11.06